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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10.
성펭레터
머그컵 팔아 연 6억 원을 버는 25세 소녀 — 크리에이터 가르보 츄

여기, 취미로 시작한 도자기 사업으로 연 6억 원 이상의 수입을 거두는 25세 소녀가 있습니다.
가르보 츄, 그녀는 12만 원이나 하는 ‘심술궂은 머그컵’을 한 달에 400개 이상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그녀의 판매는 30분 안에 매진됩니다. 2023년, 가르보가 운영하는 ‘그럼피키드 스튜디오’의 연매출은 약 6억 원입니다.
“마케팅 비용은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입니다. “소셜미디어 운영이 제가 하는 마케팅의 전부입니다.”
이후, 가르보의 소셜미디어 운영방식은 소규모 공방 마케팅의 표준이 됩니다. 가르보는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틱톡 선구자’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가르보의 방식은 제 공예 사업의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55만 공예 유튜브를 운영하는 타미tammy의 말입니다.
그러나 2023년 9월 12일, 가르보는 갑작스럽게 사업을 종료합니다. “가르보가 황금거위의 배를 갈랐다”며 전문가들은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단은 사실 가르보 사상 최고의 결정이 됩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룹니다.
“인스타 스토리로 시작하세요” — 플랫폼(**)의 함정
‘못생긴 머그컵(Agly mug)을 12만 원에 파는 방법’ — “사실 더 비싸게 받아야합니다”
‘취미를 6억 원 짜리 사업으로 만들다’ — 수익화는 기술이다
‘잘 나가는 사업을 버리다’ — 최악의 선택으로 더 많은 돈을 벌다
‘좋아요 2만 개 박히는 광고 콘텐츠’ — 가르보의 특별한 광고
—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서비스. 클래스101, 무신사, Etsy(공예 플랫폼) 등이 있다.
광고 — <인스타그램 경제학> 출시

성펭의 새로운 교육 『인스타그램 경제학』이 출시되었습니다.
성펭은 지난 2년 간 300건 이상의 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성펭은 고객들께서는 적게는 수백만 원, 크게는 수억 원 이상의 수익을 얻도록 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사이트가 될 만한 자료들을 교육으로 정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스타그램 경제학』입니다.
컨설팅 후기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이번에 공구 매출 4억이 나왔고 이를 더 발전 시키기 위해 성펭님에게 두번째 컨설팅을 신청 했습니다. …저는 시중에 나와 있는 강의 90% 이상이 성공의 모습만 베껴서 판매하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매출을 어느정도 내는 분이고 여러 강의를 들어 보셨다면 제 말에 공감 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강의 시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성펭님한테 두 번이나 컨설팅은 받았다면, 이유가 다 있겠죠? …’릴스 열심히 만들어라’, ‘이렇게 하면 조회수 터진다' 같은 흔한 컨설팅이 절대 아닙니다.….”
여기를 클릭해서 더 많은 후기를 확인하세요.
가르보 츄

1997년 6월 6일, 가르보 츄(Garbo Zhu)는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났다. 14세가 되던 해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 23세에 되던 해에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라이어슨 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한다.
건축은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점에서 공예와 비슷했고, 철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물리학과 비슷했다. “전 그 둘을 좋아했었거든요” 가르보의 말이다.
대학교 3학년 무렵에 토론토에 위치한 대형 건축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졸업하자마자 4인 규모의 부티크 사무소에 입사했다. 토론토 근교에 위치한 이 작은 회사는 소형 콘도와 맞춤 주택 건설을 전문으로 했다.
회사가 작아서 말단 직원도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가르보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대부분은 정해진 양식대로 진행됐기 때문에, 창조적인 일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건축이 나랑 맞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르보는 말했다. “월급은 나쁘지 않았지만요.”
그리고 2020년, 전염병이 창궐한다.
펜데믹 취미

정부는 도시를 봉쇄했고 사람들은 집에 갖혔다. 가르보도 그랬다. 그녀는 빵을 굽거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구요” 가르보가 말했다. “잠자고 있던 예술혼이 깨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2020년 5월, 가르보는 엄마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어머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존에서 20달러짜리 에어드라이 점토(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찰흙.—성펭)를 구매했다. 점토는 축축했고, 반죽해 말리면 저절로 굳었다. 쪼물딱 쪼물딱, 금새 그럴싸한 그릇이 완성됐다.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해서 어머니께 선물했다.
—어머
어머니는 활짝 웃었다. 가르보는 자신의 작품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재미를 붙인 가르보는 여러가지 모양의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은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가르보도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작업을 공유했다.
“일종의 커뮤니티 활동이었습니다” 가르보는 말했다. “‘새로운 물감을 시도해봤어요!’ 같은 게시물을 올리면 사람들이 반응해줬습니다. 그들과 연결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봐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요(웃음).”
그러던 어느날, 한 통의 DM이 날라온다.
작품을 판매하다

—[판매는 안하시나요?]
처음보는 계정으로부터 DM이 와있었다.
—[그동안 쭉 봐왔어요. 심술궂은(Grumpy) 머그컵이 너무 귀여워요!]
최근에 올린 게시물을 말하는 듯 했다. 그 게시물은 반응이 좋았다.
사실 이런 문의는 처음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00명 쯤이었다. 이런 문의가 오기 시작한 것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mai_accents(*)같은 인플루언서들은 매달 수 백개나 되는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내심 부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팔아볼까?
팔아달라는 사람은 이미 있으니, 만들어 건네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이 없다.
“사실 별 생각 없었습니다” 가르보는 웃으며 말했다. “팔릴 것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가벼운 마음이으로 시작해서 오히려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가르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소재—에어드라이 점토—는 판매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식품접촉 인증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곧 가르보는 도자기pottery가 판매용 소재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뛰어서 5분 거리에 공방이 있었죠” 가르보는 말했다.
—“처음이시라면 핸드빌드()가 좋을 것 같습니다” 공방주인이 말했다. “마침 매주 클래스가 열리고 있습니다.” 공방주인이 말했다.
—“얼마인가요?”
생각보다 적지않은 금액이었다. 투자라고 생각하고 등록했다.
—“가마도 빌릴 수 있나요?” 가르보가 물었다. 도자기를 구우려면 가마가 필요했다.
—“네 세트당 30달러입니다.”
이걸로 적자는 확정이었다.
—
*@mai_accentes — 유튜버 퓨티파이의 아내가 운영하는 소규모 공방 인스타그램 계정. 독특한 얼굴 표정이 붙어있는 도예로 유명함. 2020년 기준, mai_accents 게시물은 평균 1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 가르보가 mai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정황이 있음.

(가르보가 표절을 했다고 주장하는 악성 DM.)

(왼쪽은 가르보, 오른쪽은 mai의 작품)
**엄지로 점토 중앙을 눌러가며 그릇이나 볼 형태를 만드는 방식. 그릇에 손맛이 강하게 나타나는 점이 특징이다.
부업이 되다

가르보는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형태를 빚고 공방에서 초벌했다. 초벌한 그릇들을 집으로 다시 가져와 언더글레이즈로 색을 입혔다. 그리고 유약을 발랐다. 마지막으로 공방에서 재벌해서 완성했다.
도자기를 공방으로 옮길 때는 어머니의 차를 이용했다. 종종 이동 중에 도자기가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걸 오래하긴 어렵겠군’이라고 생각했어요”가르보는 말했다. “가마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죠. 제작과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싶었거든요.”
가르보는 인스타그램에서 반응이 좋았던 디자인들로 재고를 준비했다. 재고는 30개를 준비했다.
판매 일주일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판매를 공지했다. 카운트다운을 걸고 샘플사진을 첨부했다. 매일 2-3개 씩 스토리를 게시해서 청중들에게 판매를 상기시켰다.
드롭 당일,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도자기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도자기 25개는 즉시 팔렸나갔고, 나머지 5개 역시 추가로 올린 스토리에서 마감되었다.
“주문이 들어오자 ‘이건 실제 사람들이다’는 실감이 생겼습니다” 가르보는 회상한다. “부업으로 해볼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입니다.”
—
*제품을 특정 이벤트에 한정 수량만 공급하는 판매방식. 희소성과 긴급성, 그리고 FOMO(Fear Of Missing Out)를 유도할 수 있어 그 판매 효과가 강력함. 현재 크리에이터 판매의 표준이 됨.
그럼피키드 스튜디오 창간

2021년, 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회사들은 직원들을 다시 사무실로 부르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유지한 곳도 있었찌만, 가르보보의 회사는 그녀가 현장에 있기를 바랐다.
가르보의 마음은 예전같지 않았다. 출퇴근은 왕복 3시간이나 걸렸고, 회사 일은 지루했다.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는 것은 가르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녀가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르보는 바로 퇴사하지 않았다. 첫 사업부터 쪼들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1년 치 월세 정도는 저축해두고 싶었다. 수입도 적어도 월급의 두 배는 되어야 했다. 가르보는 본격적으로 퇴사 준비를 시작했다.
1/ 사업자를 내고 사업자금을 분리했다.
브랜드 이름은 ‘그럼피키드 스튜디오(Grumphy-kid Studio)’라 지었다. 그럼피Grumphy는 ‘심술궂다’는 뜻이다. 가장 인기있는 디자인 이름에서 따왔다.
로고도 ‘심술궂은 표정’으로 만들었다. 가르보는 사업이 끝나는 날까지 이 로고를 고수했다. “브랜드 일관성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가르보의 말이다.
1/ 그 다음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가르보는 모든 여정을 오롯이 통제하고 싶었다. 구매, 고객대응, 배송, 포장, 모든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놀라움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는 한계가 있었다—사실 카오스 상태였다.
가르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플랫폼과 자사몰.
플랫폼 — 플랫폼이 마케팅을 대신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광고 수수료만 지불하면 플랫폼 내부 고객들에게 노출된다. 사업에 필요한 기능도 이미 갖춰져 있어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다. 제품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자사몰 — 마케팅을 스스로 해야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고객여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예가들은 플랫폼을 선택한다—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다.
가격 경쟁 — 플랫폼 터줏대감들과 경쟁해야 한다. 플랫폼에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한정적이다. 결국 가격 경쟁이다.
높은 광고비용 — 크리에이터가 부담해야하는 광고 수수료가 크게 증가했다. 대표 공예 플랫폼 Etsy는 2021년에 들어서 마케팅 비용을 대폭 늘렸다(**). 떠나간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페이스북(현, 메타)이 광고 수수료를 크게 인상한 것도 여기에 한 몫했다.
브랜딩 이슈 — 고객들은 플랫폼 광고를 보고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한다. 고객들은 그럼피키드 스튜디오 제품을 보고 “아 저거 저번에 Etsy에서 할인하던 건데”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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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펭은 같은 이유로 자사몰로 이사했다. 네이버블로그나 노션은 그 한계가 명확했다. 처음엔 skool이나 kajabi 같은 ‘올인원 온라인 코스 플랫폼’도 검토했지만, 자유도가 낮아 기각했다. 결국 직접 웹사이트를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제작도구는 Wordpress와 Framer 사이에서 고민했다다. Framer가 더 가볍고 유연하다고 생각해 선택했다.
**2021년 코로나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Etsy의 성장률은 34퍼센트로 둔화됐다. Etsy는 마케팅 비용을 크게 늘렸다. 미국 증건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연보고서에 따르면, Etsy의 마케팅 비용은 2020년, 5억 100만 달러에서 2022년, 7억 1천만 달러에 증가했다.
수익성을 개선하다

부업 수준의 수익으로는 퇴사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가르보는 그럼피키드 스튜디오의 수익 구조를 개선해야 했다. 돈이 안되는 사업은 지속할 수 없다(*).
1/ 가마를 들였다.
가마 가격은 2천 달러로 조금 비쌌다. 그러나 투자가치는 충분했다.
제작과정의 완전 통제 — 이제 더 이상 공방 일정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리스크 감소. — 도자기를 옮기지 않아도 되어 파손 위험이 줄었다.
생산량 증가. — 생산과정이 정리되면서 제작 속도도 빨라졌다.
“‘가마를 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가르보는 말했다. “하지만 가마가 없었다면 곧 다가올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겁니다.”
2/ 물레를 도입했다.
핸드빌드는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았다. 공방 선생은 물레 방식—젖은 점토를 바퀴 위에 돌려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다—을 추천했다. 물레는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량생산에 적합했다—숙련된 장인은 5분에 그릇 하나를 만든다고 한다.
“익숙해지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죠” 가르보는 말했다. “척추 측만증까지 생겼습니다(웃음). 하지만 가치는 충분했어요. 생산량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거든요.”
3/ 가격을 인상했다.
비용이 항상 문제였다. 재료비와 배송비를 빼고나면 남는 게 없었다.
가르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도매로 물량을 늘리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가르보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럼피키드 스튜디오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특별한 경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르보는 말했다. “도매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제안은 많이 왔었지만요.” 그리고 가르보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고객과 직접거래하는 방식의 힘을 믿습니다.”
그럼피키드 스튜디오는 마침내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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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모두 정리하고, 3억 원 정도 되는 대출을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포브스 20대 CEO에 선정되기도 했던 유튜버 슈르는 말했다. “유튜브는 잘됐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흔히 말하는 투자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이었던 것이죠. 뒤늦게 수익모델을 찾았지만, 이미 많이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12만 원짜리 머그컵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제가 86달러를 벌려면 하루종일 일해야 합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뼈가 있었다.
2021년 하반기부터 “비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머그컵 한 개 가격은 86달러, 한화로 약 12만 원이었다. 가르보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이었지만, 생산과정을 모르는 청중들에게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분위기가 반전된다.
릴스 하나가 올라왔다. 가르보가 도자기를 깨뜨리는 모습으로 영상을 시작한다. 그녀는 깨진 조각들을 주워모아 통에 넣었다. 물을 조금 부었더니 축축한 점토가 됐다. 가르보는 점토를 물레돌려 형상을 빚었다. 마지막으로 가마에 넣어 구웠다. 구워진 도자기들을—여기서도 몇 개는 금이 가있다— 보여주며 영상은 끝난다.
이 영상은 좋아요 3만 개를 기록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인지 몰랐다”며 “가격을 더 받아도 될 것 같다”고 반응했다. 심지어 “이건 디자이너의 제품입니다!”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창업자가 직접 나서서 커튼을 걷어야 해요” 인터뷰에서 가르보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커튼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릴 수가 없습니다.”
퇴사하다

가르보는 하루 종일 일했다. 드롭에서 판매할 도자기를 만들면서, 연말에 판매할 한정판 도자기들도 같이 만들었다. 겨울에는 물레를 쓸 수 없다. 만들 수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이 만들어 놔야 했다. 시간은 아무리 있어도 부족했다.
9시부터 6시까지는 회사에서 일했다. 집에 도착하면 8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자정까지 작업했다. 주말에는 10시간 씩 일했다. 출퇴근에 3시간이 걸렸지만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다.
작업대 옆에는 삼각대와 아이폰 프로가 항상 놓여있었다. 콘텐츠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도자기를 만들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찍었다. 편집은 회사 점심시간을 활용했다.
“기대치를 낮추고 마찰을 줄였습니다” 가르보는 말했다. “꾸준히 하려면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2021년 연말 드롭은 역대급이었다. 도자기를 200개나 준비했는데, 단 10분 만에 매진됐다. 가르보는 건축회사 월급의 3배 이상을 벌어들였다.
2022년 1월 31일 브이로그 한 편이 올라온다. 가르보는 회사로 보이는 장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이윽고 건물에서 나와 검은색 승용차에 오른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릴스 본문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보스 없는 첫 날.”
한계에 다다르다

2022년 3월, 가르보는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이사했다. 가르보는 드디어 자신만의 공방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스튜디오는 넓고 환기가 잘되어 가마를 들일 수 있었다. 월세는 980달러다. 그녀는 “토론토라면 6배는 더 비쌌을 것”고 회상한다.
사업은 순항 중이었다. 달에 한 번 열리는 드롭은 대부분 1시간 안에 매진됐다. 소셜미디어가 성장하면서 수요가 폭발했고, 가르보는 그 수요를 약간 부족하게 충족시켰다. 드롭의 긴급성과 희소성은 ‘망설이면 품절’이라는 강한 충동을 만들었다.
가르보는 이메일리스트를 잘 활용했다. 그녀는 이메일리스트 가입자들에게 구매페이지에 10분 먼저 접근할 수 있는 비밀링크를 제공했다. 일종의 얼리 액세스였다. 이 작은 보상은 이메일리스트 규모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이는 드롭의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겉과 달리, 가르보는 한계에 닿아 있었다.
—좋아요가 3천 개…?
가르보는 두 눈을 의심했다.
2021년 상반기까지만해도 좋아요 1만 개는 거뜬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점점 줄더니, 마침내 3천 개 미만까지 떨어졌다. 인스타그램은 드롭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에 동맥경화가 오고 말았다. 지난 10월 이후로 비슷한 콘텐츠를 돌려 쓰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가르보는 하루종일 물레만 돌리고 있었다. 손을 멈추면 마감을 맞출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물레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면 곧 망하겠구나” 가르보는 조용히 읇조렸다.
“더현대 팝업에서 1억을 태웠습니다.” 유명 크리에이터 그룹 <디 에디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은 분명한 실패였습니다. 콘텐츠 제작과 제품 제작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었습니다.”
자유를 얻다

가르보는 움직였다.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웹사이트 관리, 배송 및 고객대응 등의 자잘한 업무들을 맡겼다. 숨이 트였다. 고정비가 두려워 채용을 미루고 있었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다음엔 제작을 맡겼다. 일부러 도예 경험이 없는 사람을 뽑았다. 캐스트 작업(형틀에 반죽을 넣어서 굳히는 방법으로 대량생산에 적합하다.—성펭)이라면 초보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시스턴트가 가져온 결과물은 엉망이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쳤다. 이내 나아졌고, 그녀는 제품 제작 전반을 맡아주었다. 비정규 직원을 고용해 그녀를 서포트하게 했다. 비직원은 3명까지 늘어났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은 ‘나한텐 맞지않아’라고 말합니다‘” 도자기 도매로 연간 17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메이 박은 이렇게 말했다. “그 다음은 뻔합니다. 번아웃에 걸리고 사업을 접는 거죠.”
가르보는 완전한 자유를 원했다. 시험삼아 드롭 전후로 2주 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가르보는 제품 개발과 콘텐츠 기획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직원들에게 맡겼다.
“제품 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콘텐츠는 그렇지 않아요” 가르보는 말했다. “사업가는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다.
전성기를 맞다

2023년 1월 어느날 아침, 가르보는 책상위에 올려진 샌드위치를 발견했다.
—이거 뭐야?
가르보가 빈센트(가르보의 남편. 프랑스 출신, 직업은 그래픽 디자이너다.—성펭)에게 물었다.
—아직 먹고있어. 버리지마.
왜 샌드위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걸까? 가르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켰다. 점토를 피자도우처럼 둥글게 펴고 식빵모양으로 잘라 테두리를 올렸다. 뚜껑도 만들었다. 점토를 계란후라이, 양상추, 치즈 모양으로 빚어 차곡차곡 올렸다. 초벌을 마치자 모양새가 그럴듯했다. 색을 입히고 재벌해서 마무리했다.
—…….
가르보는 미간을 찌푸렸다. 양상추 가장자리가 깨져 있었다. 더 두껍게 만들었어야 했나?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이내 귀찮아졌다. 청중들은 실패담을 좋아하니 그냥 이대로 업로드하자. 가르보는 “try again?”이라는 말풍선을 붙이고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 아침, 가르보는 휴대폰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틱톡 조회수는 2천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도 좋아요 10만 개가 넘었다. 역대 최고 성과였다. 사람들은 “너무 귀엽다”며 “남편 반응도 빨리 보여달라”고 재촉했다. 가르보는 콘텐츠가 충분히 퍼지도록 3~4일을 기다린 뒤 2탄을 올렸다. 2탄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3만 개를 기록했다.
가르보는 비슷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이번에는 라면 그릇이다—빈센트는 라면을 좋아한다. 일본 라면집에서 볼 법한 디자인을 크게 만들었다. 결과는 잭팟이었다. 2023년 8월에 올라온 이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43만 개를 기록했다.(가르보의 콘텐츠는 2탄에서 더 크게 터지는 경향이 있었다.—성펭)
이 사건을 계기로 가르보의 소셜미디어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만을, 틱톡 팔로워는 50만을 달성했다. 드롭 성과도 크게 올랐다. 2023년 하반기, 가르보는 한 달 평균 400개 이상의 머그컵을 판매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르보는 사업을 끝내기로 결정한다.
그럼피 키드 스튜디오를 끝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할 때입니다.]
2023년 9월 12일, 가르보의 소셜미디어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그럼피키드 스튜디오의 폐업을 알리는 공지문이다.
—[오랫동안 특정 스타일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도자기 외에도 다른 많은 열정들이 있습니다.]
공지문은 이렇게 끝났다.
—[연말 할리데이 드롭을 마지막으로 사업을 종료합니다.]
“사업은 순항중이었습니다” 가르보는 담담히 말했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가르보는 2023년만 6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왜 가르보는 잘나가던 사업을 접었을까.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도자기 사업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낮은 수익성 — 기본적으로 소규모 도자기 공방은 수익성이 좋지 않다. 비용은 높은데, 부를 수 있는 가격에는 한계가 있다. 파스타는 2-3만 원도 받을 수 있지만, 자장면은 1만 원만 넘어가도 비싸게 느껴진다.
낮은 재구매율 — 가르보의 사업은 신규고객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2023년 하반기 기준, 그럼피키드 스튜디오의 재구매율은 약 10퍼센트다. 이는 매출의 90퍼센트가 신규고객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 성장세가 꺾이면 사업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쟁 심화 — 2023년에 들어 도자기 온라인 강의(*)들이 부쩍 늘었다. 바다는 이미 붉게 물들었다. 도자기는 기능적으로 차별화하기 어렵고 가격도 높게 받기 힘들다. 가르보는 이미 고점에 도달했다고 느꼈을 것이다.(mai_accents는 2023년 3월에 문을 닫았고, 가르보도 같은 해 10월에 사업을 접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위임의 한계 — 주얼리 사업은 거의 모든 공정을 위임할 수 있다(**). 외주 제작 체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자기 사업은 그렇지 않다. 가르보는 이 시기에 자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절실했다.
그러던 와중, 가르보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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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8일, 가르보도 도자기 온라인 강의를 출시했다. 교육 전문 플랫폼과 협업했으며 유료광고로 홍보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홍보하긴 했지만 한 번에 그쳤다. “솔직히 말해서, 온라인 강의 강사가 최고의 직업이었습니다” 독일의 도예가 mya의 말이다. 그녀는 도예가로써 12가지 직업을 경험했다.
**가르보는 2025년 현재, 주얼리 사업을 준비 중이다. 주얼리 시장은 높은 가격에 관대하다는 장점도 있다.
인플루언서로 거듭나다


—[좋은 아침입니다—!]
2023년 11월에 올라온 릴스다. 화면 속 가르보는 직원들에게 환하게 인사하며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그 걸음은 마치 패션 모델의 런웨이를 보는 듯하다.
이 릴스에서 가르보는 한 달 동안의 ‘워크인’장면을 빠르게 편집해 보여준다. 이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105만 개를 기록했다. 제품 중심이었던 초기 콘텐츠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 한 편의 영상으로 가르보는 세계적인 인플루언서로 거듭난다.
이후, 가르보는 더 많은 광고를 받게 되었다. 광고는 특정 주제에 얽메이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기에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익성이 좋았다.
높은 마진 — 광고로 받는 수수료 대부분이 순수익이었다. 재료비도 인건비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높은 재구매률 — 광고는 기존 고객들에게 반복해서 팔 수 있었다.
가르보의 마지막 드롭이 이를 증명했다.
2023년 12월 마지막 드롭은 역대급이었다. 가르보는 연말 드롭에서만 600개가 넘는 도자기를 판매했다. 예상 매출은 약 9천만 원. 마진 30퍼센트를 가정하면, 가르보는 약 3천만 원의 순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그녀의 유명세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익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시 가르보는 광고 3개로 이에 준하는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 훨씬 더 많은 시간적인 자유를 누리면서도 말이다.
2024년 1월, 가르보는 “내가 비지니스를 접은 이유”라는 제목의 릴스를 업로드한다. 가르보는 해당 릴스에서 “휴식이 필요했다”며 “도자기는 앞으로도 취미로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릴스는 6만개 좋아요를 기록한다.
이후 가르보는 그럼피키드 스튜디오 계정을 개인 계정으로 전환한다. 프로필 설명에는 “dress cute, make pottery”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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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가르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0만 명을 넘었다. 틱톡 팔로워는 약 100만 명이다. inbeat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구간의 인플루언서는 광고 1건 당 각각 $5000(한화 약 650만 원), $7000(한화 약 910만 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토론토로 돌아오다

2024년 3월, 사업을 정리한 가르보는 토론토로 돌아왔다. 몬트리얼 스튜디오와 직원들은 모두 정리했다. 휴식 겸 고향 광저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찍은 찍은 브이로그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가르보는 이 영상을 가장 큰 전환점으로 꼽는다.
2024년 4월, 가르보는 토론토에 새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월세는 $6000, 한화로 약 840만이다. 몬트리얼 시절보다 다섯 배나 비쌌다. 가르보는 이곳을 주로 콘텐츠 제작 공간으로 활용했다.
2024년 12월 2일, 가르보는 아들을 품에 안았다. 이름은 [에밀]. 전 세계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가르보는 백만 인플루언서가 된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100만 명을 돌파했고, 틱톡은 300만 명을 넘어섰다.
가르보는 트렌드에 기민했지만 휘둘리지 않았다. 그 균형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가르보는 브이로그 화면에 나레이션을 까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특유의 솔직한 스토리텔링은 브이로그 형식에 잘 맞았다. “가장 팔로워가 잘 붙는 콘텐츠는 ‘토킹헤드—화면을 보고 말하는 형식’입니다”라고 69만 인스타그래머 williamscxtt는 언젠가 말했다.
가르보는 광고에도 자신의 스토리를 녹여냈다. 아래는 좋아요 1.9만 개를 기록한 가르보 광고의 스크립트다.
엄마와 나는 단짝 친구 같은 사이가 아니었어요. 아시아 교육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항상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무서웠어요.
엄마는 관대했지만 대학교까지 연애를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빈센트(남편)과 사귀었을 때 6개월이나 비밀로 했어야 했어요.
엄마가 저를 과보호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그 모든 엄격함은 (엄마 나름의) 사랑이었음을 지금은 알아요.
(…)나의 엄마는 이제 에밀(아들)의 할머니이기도 해요. 그녀는 우리 둘의 불빛을 지켜주고 있어요. Fiamma by Ferragamo(향수 이름)은 그런 엄마 같은 여성에게 바치는 헌정이에요. 우아하고, 강하며, 빛으로 가득한 그녀들에게요.
(…)올해 어머니날, 나는 내 삶의 빛인 어머니에게 그녀의 향기를 닮은 향수를 선물하려고 해요.
2025년 9월 22일 기준, 가르보의 소셜미디어는 인스타그램 124.9만 명, 틱톡 11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첫 업로드 이후, 그녀는 단 한 번도 콘텐츠 업로드를 쉬지 않았다. 가르보는 올해로 만 28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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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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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펭은 누구인가요?
마케터이자 창작자입니다. 3년 이상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양한 디지털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230명+ 개인고객과 30명+ 기업고객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직접적으로 도왔습니다. 현재는 뉴스레터와 디지털 교육으로 고객을 돕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당신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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